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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상실의 시대책]상실의 시대(노르웨이 숲) 무라카미 하루키
    심리 2025. 2. 28.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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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진료실에 갇혀서, 진료에만 쫓기다보면, 나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마감을 하고 매일 늦은 시간 집에 도착하는데, 이렇게 사는게 맞는 것인지 하는 물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제6회 국제 뇌자극 학회를 마치고, 기차로 이동하며 한국의 뉴스를 보다가, 몇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6th International Brain Stimulation Conference 국제뇌자극학회 고베

    제6회 국제 뇌 자극 학회(6th International Brain Stimulation Conference)가 2025년 2월 23일부터 26일까지 일본 고베에서 개최됩니다. 이 학회는 뇌 자극 분야의 최신 연구와 혁신을 논의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mentalhealth.tistory.com

    그 중 한가지는 책 《상실의 시대 》 (노르웨이 숲) 책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한 가지는 우리가 혹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여러가지의 '상실'에 대한 것 때문입니다. 삶의 기쁨, 자녀를 키우는 잔잔한 행복, 타인에 대한 존중, 양보, 삶에 대한 긍지, 사회적 규칙과 질서, 미래에 대한 희망, 열거할 수 조차 없는 수 많은 정신적 가치들을 상실한 이 시대가, 약 40년 전 책 《상실의 시대》 에서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가 탐구 했던 것과 일치하였기 때문 입니다.

    '상실의 시대'에서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상실한다'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합니다. 특히, 주인공 와타나베 토오루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 죽음, 그리고 청춘의 순수함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상실을 경험하며 성장해 나갑니다. 소설 속 가장 두드러지는 상실은 죽음과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입니다. 주인공은 친구 키즈키의 자살, 연인 나오코의 정신적 고통과 죽음, 그리고 미도리와의 관계에서 오는 불확실성 속에서 삶의 무게와 필연적인 상실배워갑니다. 하루키는 이를 통해 "삶이란 본질적으로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임을 암시하며, 결국 우리는 상실을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던집니다.

    어떻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특히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와타나베가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방향을 상실했다는 감각 그 자체가, 어쩌면 지금의 한국인 들이 느끼는 혼란의 상태와 닮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은 상실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려 합니다. 이는 단순한 절망이 아니라, 상실을 인정하고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하루키 특유의 관조적인 태도이겠지요.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어떻게 살아가고 계십니까?


    사족을 좀 붙이자면, 저는 한글판 제목 《상실의 시대》를 일본 원제 《ノルウェイの森 (Norwegian Wood)》보다 더 좋아합니다. 원제 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지만, 오히려, 소설의 핵심 주제를 더욱 명확하게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죠. 알려진 바로는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즈(The Beatles)의 노래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에서 따온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이 노래는 나오코가 특히 좋아하는 곡으로 등장하며, 그녀와 와타나베의 대화 속에서도 언급됩니다. 그렇다면, 왜 하루키는 이 노래를 제목으로 선택했을까요?

    그런 아마도, 비틀즈의 〈Norwegian Wood〉는 쓸쓸한 회상과 상실을 담은 노래이기 때문 일 것입니다. 가사 속 화자는 과거의 한 여인을 떠올리지만, 그 관계는 더 이상 지속되지 않고, 결국 남는 것은 공허한 기억뿐입니다. 이는 소설의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와타나베는 과거의 기억과 상실을 곱씹으며 살아가고, 나오코 역시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하지만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서 '마의 산'으로 상징되는, 나오코가 머물던 요양소 주변의 자인이 ‘숲’을 연상시키며, 그녀의 내면적 세계를 은유하는 공간으로 작용합니다. 요양소는 마치 현실과 분리된 또 다른 세계처럼 존재하며, 나오코는 그곳에서 점점 현실과 단절됩니다. 이는 ‘Norwegian Wood’의 몽환적이고도 고립된 느낌과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이면적 의미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Norwegian Wood’를 직역하면 ‘노르웨이산 목재’ 혹은 ‘노르웨이 숲’이지만, 이 표현은 가사 속에서 종종 가짜 목재(값싼 합판)를 의미하는 은유적 표현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즉, 겉으로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상은 허무하고 덧없는 감정을 암시할 수 있습니다. 와타나베가 아니 우리가 경험하는 사랑과 인생의 순간들도 그러한 허망함을 내포하고 있죠.

    이 소설은 와타나베가 잃어버린 것들을 떠올리며 성장해가는 이야기입니다. 그가 잃은 것들—친구, 사랑, 순수함—을 상징하는 것이 ‘노르웨이의 숲’이며, 이 제목은 그의 감정적 여정을 함축적으로 담아냅니다. 결국 《노르웨이의 숲》은 단순한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상실, 그리고 그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내면을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르웨이 숲'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해나 은유를 이해보다, 20여년 전의 저에게는 결과적으로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이 소설의 본질적인 메시지를 더욱 잘 담아서, 더 와닿을 수 있도록 만든 뛰어난 번역 제목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이 좋구요.


    와타나베는 소설 내내 키즈키와 나오코의 죽음을 잊으려 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기억 속에서 지우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방황합니다. 그렇게, 상실과 삶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와타나베는 친구 키즈키의 자살 이후, 그가 왜 죽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합니다. 그리고, 남겨진, 키즈키의 연인인 나오코를 사랑하게 되죠. 아마 이건 단순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죽은 친구와 연결을 놓지 못한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나오코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요양소에 들어간 후에도, 그녀를 계속 찾아가죠. 그녀를 사랑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완전히 놓아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렇게,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한채, 그 속에서 표류하게 되죠. 마치, 그 죽음이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처럼요. 

     그래도, 와타나베에게는 미도리가 있었죠. 소설 후반부에서 미도리는 와타나베에게 살아있는 현실적인 관계를 제안하는 인물입니다. 와타나베는 미도리와 함께하면서도 여전히 나오코를 떠올리며 죄책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나오코가 죽은 후, 그는 완전히 무너지는 대신 미도리를 향해 나아가려는 결정을 합니다. 이 선택은 단순한 새로운 사랑이 아니라, 그가 상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첫걸음이죠. 아마도, 그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최소한 그는 이제 과거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현실을 살아가려 하고 있겠죠.

    '상실'을 안고
    살아가라

    문득 저는 이렇게 하루키가 전달하는 중요한 메시지 "'상실'을 안고 살아가라." 가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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